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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는 이야기
   작성일 : 2003-09-22, 05:12:13 name : galmae hit : 7028
   글제목 : <한심남녀 공방전> 10. 해석 대구빡

나의 취업성공신화는 모친의 태도에 일대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상기된 표정으로 전 아파트단지에 나의 취업소식을 긴급 타전한 모친은 취업성
공기념 특별 메뉴로 고풍스러운 은은한 브라운 색조가 돋보이는 오뎅과 현대적
인 감각의 핑크빛이 그 세련미를 더하는 쏘세지를 식탁위에 선보여 신호등의
초록색만 봐도 진저리를 치던 우리부녀의 극찬을 받았다.
모친은 또한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신입사원으로서 이제 막 첫발을 내딛는 나
의 깔끔한 첫 인상을 위해 적극적인 의상협찬 의지마저 표명함으로써 오뎅과
쏘세지로 이미 일차감동먹은 우리부녀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모친이 제시한 코디의 컨셉은 대한민국의 식품유통업계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
아갈 유능하고 참신한 인재로서 그 전문성을 표출할수 있는 포멀한 정장이었
다.
모친은 고이 나빌레라 안방으로 날라가 심혈을 기울여 옷장을 뒤지더니 자신
이 가장 아끼는 자켓을 고이 들빌레라 들고 나왔다.
그것은 가슴에 수놓여진 금박나비가 금방이라도 사뿐이 날아오를듯한 화려함
과 어깨에 삽입된 왕뽕을 따라 이어지는 중후한 실루엣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
는 재래시장표 앙드레김 쟈켓이었다.
이것은....모친조차도 닳을까 아까워 차마 입지 못한다는....
그 착용모습을 1년에 한번 볼까말까한 바로 그 전설의 쟈켓....
나는 떨리는 손으로 황금나비를 쓰다듬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것은..................겨울쟈켓이었다.
설마 어젯밤 슈퍼앞에서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대구빡과 나의 만남을 모친이 알
고있는것인가...
그리하여 대구빡과 만날시 철저히 단죄하리라는 자신의 발언에 책임을 지기위
해 나를 떠죽이려 하는 것인가...
나는 모친의 안색을 살피며 최대한 완곡하게 모친의 의상협찬 제의를 사양하였
다.
'엄마....이거는 쪼매 뜨뜻하지 싶다'
순간 모친의 표정에서 미세균열이 포착되었다.
아...이대로 축제는 끝나는 것인가....
그러나 나의 취업성공이라는 유래없는 호재를 맞은 모친의 감격주는 가파른 상
승세를 유지했다.
모친의 나의 거부를 혼쾌히 받아들이고는 내 국방색 민소매티와 계룡산야유회
기념 츄리닝을 정성스럽게 다려주었다.
나는 너무 정성스러운 다림질을 이기지 못하고 누렇게 눌러붙은 민소매티와 칼
같이 주름이 잡힌 츄리닝을 입고 보무도 당당하게 첫 출근길로 나섰다.
내가 탄 엘리베이터가 1층에 멈추고 문이 스르르 열렸다.
순간 요란한 고적대의 빵빠레가 귀를 울렸다.
엘리베이터 문밖에는 모친의 긴급타전을 받은 아파트주민들이 '축 취업'이라
고 적힌 플랭카드를 들고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바닥에 깔린 빨간카펫트 위로 한걸음을 내딛자 색동저고리를 곱게 받쳐입은 화
동이 꽃다발을 전해주었다.
나는 연도에 늘어선 수많은 주민들의 열렬한 환호속에서 아래층 용식이가 운전
하는 세발자전거 뒷좌석에 꾸개져 타고 싸이클퍼레이드를 벌이며 슈퍼앞까지
당도했다.
그러나....하루만에 다시 찾은 슈퍼는 하루만큼 더 망해있는 듯 보였다.
태초에는 황제슈퍼였을것으로 추정되는 간판은 ㅇ받침이 떨어져 나가 화제슈퍼
가 되어 있었다.
연도에 나온 주민들 사이에서는 화제슈퍼가 과연 오늘 망할것이냐 내일 망할것
이냐 하는 문제가 최고의 화제로 떠올랐다.
어떻게 구한 직장인데 이대로 망하게 둘수는 없었다.
나는 내 모든 정열을 다바쳐 소형유통업계의 전설적인 성공신화를 이루어내고
말겠다는 불타는 의지로 가게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여는 순간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사방팔방으로 날뛰고있는 파란해
골 13호였다.
직원교체에 앙심을 품은 대구빡이 파르라니 깎은 대구리로 헤드뱅잉을 구사하
며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라면국물 묻은 나무젓가락 두 개로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던 늙은제비
가 나를 발견하고는 뒷대구리를 보이고 있는 대구빡의 옆을 재빨리 스쳐 파바
박 뛰어와 젓가락 한짝을 나에게 넘겨주었다.
늙은제비에게 바톤을 이어받은 나는 당당하게 대구빡을 꾸짖었다.
'넘의 영업장에 와가 와 행패고?'
대구빡이 납량특집 공포영화 마지막 장면처럼 쓱 돌아보았다.
'그기 니였나?'
'그렇다'
나는 이땅의 자랑스러운 노동자의 신분으로서 국민소득 2만불을 향해 정진하
고 있는 대한민국의 GNP를 까먹고 있는 암적인 존재인 대구빡을 깔아보았다.
대구빡이 주인공은 암만 뛰어 달아나도 절대 뛰지않고 무게잡고 뒤쫒아가는 공
포영화의 괴물포즈로 저벅저벅 내 앞으로 걸어왔다.
'벼룩이 간을 빼무라'
'넘의 사정 봐줄 형편 아이다'
'내 꼭 돈 벌어야 된단 말이다'
'내도 꼭 돈 벌어야 된다'
대구빡이 츄리닝 주머니를 뒤져 빈 장미갑을 내보였다.
'내 당장 담배값도 엄따'
나는 누렇게 눌러붙은 민소매티를 내보였다.
'내는 갈아입을 옷도 엄따'
'내는 갈아입을 빤스도 엄따. 보이주까?'
대구빡이 츄리닝 허리고무줄에 손가락을 걸고 5센치가량 내렸다.
여기서 눈을 가리거나 시선을 돌린다면 그것은 곧 나의 패배로 이어질 터...
'나는 갈아찰 걸레도 엄따. 보이주까?'
나는 민소매티 밑단을 잡고 5센치가량 올렸다.
대구빡이 잠시 주춤하더니 비틀거리며 카운터를 짚었다.
'흰쌀밥에 소고기국 한번만 묵고 죽어봤으마...'
나는 70년대 방화 여주인공 포즈로 바닥에 쓰러졌다.
'소고기 씻은 물이라도 한박아지 묵고 죽어봤으마...'
대구빡과 나의 초궁핍 퍼포먼스를 관람하던 늙은제비가 눈물을 주루룩 흘렸
다.
'용기들 잃지마소'
늙은제비의 전열이 흐트러진 틈을 놓치지 않고 대구빡이 재빨리 늙은제비에게
달려들어 양손을 덥썩 움켜잡았다.
'그라마 내를 써주이소'
'내한테 가까이 다가오지 마라'
내 혈색 못지않게 안색이 시퍼래진 늙은제비가 어딘가에 숨어있을 킬러의 총구
를 찾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대구빡의 손을 뿌리치고 내 등뒤로 숨었다.
내가 어드벤티지를 얻을수 있는 절호의 챤스였다.
나는 최대한 친밀한 포즈로 늙은제비의 어깨를 토닥였다.
'걱정마이소. 사장님 한테는 제가 있잖아예'
순간 대구빡의 찢어진 눈꼬리가 파바박 귀를 스쳐 뒷통수까지 찢어졌다.
360도 시야확보가 가능한 너를 이나라의 경비업계가 몰라본다는 것은 정녕 통
탄할 인재손실이 아닐수 없구나...
대구빡이 늙은제비와 나를 번갈아가며 야렸다.
'둘이 뭔 사이고?'
'니가 끼어들 수 없는 사이다. 포기해라'
순간 대구빡의 눈꼬리가 대구리를 일곱바퀴 반을 돌아 째지고는 내눈을 향해
멈추었다.
'니 저 꼰대한테 덤핑친나?'
'뭐시라?'
늙은제비가 내 등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와 덤핑으로 넘길 물건인나?'
대구빡은 늙은제비를 개무시하고 집중적으로 나를 야렸다.
'그 댓가로 여기서 일하기로 한기가?'
나의 순수한 열정과 냉철한 상황판단, 그리고 적절한 시의포착 이 삼박자가 정
확히 맞아떨어져 일구어진 이 신화적인 성공사례를 그런 추악한 거래의 산물
로 매도하다니...
나의 불타오르는 분노의 정기는 고무쓰레빠를 공중부양시켰다.
'니 오늘 살포시 죽어봐라'
나는 떠오른 쓰레빠를 낚아채 대구빡의 대구리를 혼신의 힘을 다해 갈겼다.
맨가죽에 착착 감기는 고무의 찰진 감촉이 참으로 정겨웠다.
정녕 내몸에 변태의 피가 흐르고 있는것인가...
애초의 분노마저 망각한채 그 정겨운 감촉에 취해 다시한번 놈의 대구리로 쓰
레빠를 휘두르는 순간 대구빡의 욕실쓰레빠가 나의 고무쓰레빠를 가로막았다.
대구빡과 나의 쓰레빠가 맞부딪혔다.
'순순히 내 쓰레빠를 받아라'
'순순히 진실을 밝히라'
나는 대구빡을 제압하기 위해 쓰레빠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가했다.
그러나 대구빡 역시 순순히 밀릴 기세가 아니었다.
대구빡과 나는 맞부딪힌 쓰레빠를 부들부들 떨며 서로를 노려보았다.
이대로는 저놈의 곰같은 힘에 밀릴 수밖에 없구나...
나는 대구빡의 쓰레빠를 힘껏 밀어젖히고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자세를 낮추고 대구빡의 빈틈을 노리며 놈의 주위를 천천히 돌기 시작
했다.
대구빡 역시 대구리를 움추리고 나를 견제하며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내 머리를 묶었던 노란 고무줄이 팅 끊어지며 머리카락이 회전하는 선풍기 바
람에 스산하게 휘날렸다.
대구빡의 덜깍은 수염이 선풍기 바람에 파르르 나부꼈다.
슈퍼안에는 긴장된 정적만이 감돌았다.
순간 나를 견제하며 옆으로 한발짝 내딛던 대구빡이 진열대 모서리에 걸려 움
찔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쓰레빠를 머리 위로 쳐들고 놈의 대구리를 향해 붕
날랐다.
'하압~~'
그러나 와이어가 너무 탄력을 받은 탓인가...
나는 너무 멀리 붕 날고 말았다.
내 쓰레빠는 대구빡을 지나 진열대에 쌓여있는 가루세제 비트를 내리치고 말았
다.
비트가 박살나며 하얀 가루가 사방에 흩날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대구빡이 등뒤에서 공격을 가해왔다.
나는 재빨리 바닥을 굴러 옆으로 피했다.
대구빡의 쓰레빠는 바로 옆 과자진열대를 내리치고 말았다.
사또밥 봉다리가 터져 사또밥이 사방에 흩어졌다.
'내 오늘 니를 용서하지 않겠다'
'내야말로 오늘 진실을 밝히내겠다'
대구빡과 나는 쓰레빠를 높이 치켜들고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
대구빡과 내가 마구 휘두르는 쓰레빠에 칠성사이다 피티병이 박살나 사방에 흩
뿌려졌다.
일찍이 쓰레빠권으로 무림을 평정했던 절대고수 모친에게 직접 사사받은 나였
지만 대구빡 역시 무협지를 쓰는 놈답게 그 내공이 만만치 않았다.
대구빡과 나의 대결은 눈발이 휘날리는 겨울이 지나고(비트) 벗꽃이 흩날리는
봄을 지나(사또밥) 장대비가 쏟아지는 여름이 다하도록(칠성사이다) 승부를 가
릴수가 없었다.
대구빡과 나는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맞겨눈 쓰레빠 사이로 서로를 노려보았
다.
순간.....어디선가 들려오는 죄없는 민초의 원성...
'점빵 다 뿌술기가?'
아...그렇다.
이곳은 나의 직장이 아니던가.
사죄를 구하기 위해 늙은제비를 돌아보는 순간...
'퍼벅!'
대구빡의 쓰레빠가 내 쓰레빠를 날려버렸다.
연이어 대구빡은 비호같은 동작으로 내 목에 쓰레빠를 겨누었다.
아...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사사로운 감정에 이끌려 적에게 틈을 보이고 말
았구나....
이런 시정잡배에게 무릎을 꿇다니 모친을 무슨 낮으로 대한단 말인가...
대구빡이 쓰레빠끝으로 내 목을 찔렀다.
'순순히 불어라. 덤핑친나 안친나?'
나는 턱을 고고하게 치켜들고 대구빡을 야렸다.
'대답할 가치를 몬느낀다'
'그렇다면 고통없이 보내주마'
대구빡이 쓰레빠 끝에 힘을 가하자 숨통이 막혀왔다.
'자...잠깐'
'마지막으로 묻는다. 친나 안친나?'
'안칬다'
대구빡이 발바닥을 털고 쓰레빠를 껴신으며 승자의 거만한 눈길로 나를 쫙 깔
아보았다.
'워낙 품질에 하자가 심하이 덤핑도 힘들기라'
대구빡은 획 등을 돌려 카운터 뒤에 찌그러져 있는 늙은제비에게 다가갔다.
'손해배상 하소'
'뭔 손해배상?'
'집에서 여기까지 헛걸음 하니라고 힘 다 빠진거 보상하소'
'힘 다 빠진기 그래 붕붕 날르나?'
'함 더 날라주까요?'
'아...아이다'
늙은제비가 얼른 금고를 열었다.
'얼마고? 얼마면 되노?'
늙은제비가 금고에서 500원짜리 동전을 꺼내 대구빡에게 내밀었다.
'거스름돈은 기냥 가지라'
'장난치요?'
대구빡의 시선이 카운터 위에 달린 담배진열대에 머물더니 에쎄 한갑을 뽑았
다.
'현물로 가지가요'
늙은 제비가 움찔했다.
'잠깐!'
'와요?'
'장미로 가지가마 안되겠나?'
대구빡이 늙은제비를 야리며 다시 쓰레빠를 벗어 들었다.
늙은제비가 얼른 일회용 라이터를 내밀었다.
'내 성의다'
대구빡은 에쎄와 일회용 라이터를 챙겨들고 패배의 충격으로 패닉상태에 빠져
있는 나에게로 다가왔다.
'니 일해라. 돈 마이 벌어가 갑부되라'
이 놈이 여갑부를 향한 내 원대한 꿈을 어찌 알아챈 것인가.
내몸에 벌써 여갑부의 성스러운 정기가 흐르고 있단 말인가.
대구빡은 유유히 돌아서 가게문을 열고 나갔다.
멀어져가는 놈의 유난히 뺀질거리는 뒷대구리를 야리고 서있는 내 옆으로 늙은
제비가 사사삭 다가왔다.
그리고 내 귓가에 은밀하게 속삭였다.
'절마 킬러 담배 뺏어가 킬러한테 쫒기는 기가?'
늙은제비의 머리에서 흘러내린 해표콩기름 한방울이 내 어깨에 떨어졌다.
대구빡은 콧노래를 부르며 아파트 건물 사이로 멀어지고 있었다.
(먼거리에서 대구빡의 콧노래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가 하고 지극히 상식적인
의문을 품으시는 분들 계시리라 믿는다. 절대 이글에서 합리적인 상황묘사를
기대하는 우를 범하지 마시라)
대구빡은 이제 작은 점이 되어있었다.
대구빡아. 무엇이 그리도 좋은것이냐....
일자리 뺏기고 대신 에쎄 한갑 얻은 것이 그리도 좋은 것이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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